3년의 개발자 생활 끝에 생각하는, 일하는 마음 (feat. 명언 대잔치)


저의 회사생활 3년 차, 특히 마지막 몇 달은 사춘기와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엔 개발자라는 직업을 나의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너무 기뻤고, 분명 좋아서 시작한 일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즐겁지가 않았어요. 이 사실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 달 이상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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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라는 물리적인 공간과 멤버들의 시선 없이 저는 게을렀습니다. 스스로 게으름을 감지하고 나서는 서둘러 다시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완전히 자율적인 환경에서는 일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취미로 하는 요가는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일은 왜 이렇게 할 마음이 안 드는 건지. 조금 더 고요하게 저를 들여다보고 느낀 것을 얘기하자면요, 제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일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것은 제가 원했던 저의 모습(덕업 일치로 즐겁게 일하는 geek 한 개발자)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동안 제가 제 시선을 원하는 모습에만 고정해두고서, 실제도 그와 같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 파문으로 몇 가지 의문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꽤 오랫동안요.

개발을 일이 아닌 취미로 남겨두었다면 계속 즐거웠을까?

일이란 건 애초에 하기 싫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돈'과 '남 보여주기 번듯함' 외에, 나에게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내적인 동기)은 어떻게 찾아지는 걸까?

🤔

세상에는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들도 정말 많을 텐데요. 그래도 이 친구들(고마운 놈들이라고 해야겠죠)은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종류의 물음들 인 것 같습니다. 정답이라고 할 것은 없겠지만요, 지금은 그래도 나름대로 제가 필요한 답은 찾았습니다.

#일의 즐거움

우선 <굿 라이프>라는 책을 읽어보니 '일이 즐겁지 않다'라는 제 생각의 전제가 잘못되었더라고요.

저는 즐거움을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일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취미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애초에 그 결이 다른 것인데 말입니다. 의도 없이 마냥 좋아서 하는 즐거움, 못해도 즐기면 그만인 즐거움을 취미가 아닌 일에서 느끼기는 힘들죠.

건강한 음식에서 자극적인 맛을 찾으며 맛없다고 투덜댔던 격입니다. 몸에 좋은 음식이 MSG의 감칠맛까지 있을 리가 있나. 건강한 음식은 건강한 맛으로 먹어야죠!

자부심, 고요함, 유능감. 이 감정들이 <굿 라이프>에서 최인철 교수가 꼽는 일의 즐거움입니다.

행복을 성취와 별개 혹은 대립되는 것으로 보는 이유는 우리가 행복한 상태에 대해서 지나치게 좁게 이해한 나머지 자부심이나 고요함 같은 감정들을 행복과 거리가 먼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 의미 있는 성취의 끝에 찾아오는 자부심과 고요함, 그리고 그로 인해 충족되는 유능감은 행복에 매우 핵심적인 요소다. 행복과 성취는 양립 가능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유발하기도 한다.

최인철의 <굿 라이프> 중에서

일의 즐거움은 결국 스스로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내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일하는 마음>이라는 책의 저자는 유능감(두려움을 없애는 즐거움)을 자신의 동력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이렇게 자각하고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건 더 큰 성공을 바라는 마음과는 좀 다른데, 두려운 상황이 점점 줄어들고,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편안하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아직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지 못하는 일’에 몸을 던지길 좋아하고, 그 일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또 한 뼘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현주의 <일하는 마음> 중에서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이라는 책에서는 아득하게 초월적인 답을 들려줍니다. 일에 대한 보답(=동기)은 월급이 아니라 '순수한 노동의 기쁨'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숨쉬기에 대한 보답은 갈채가 아니라 공기다. 등산에 대한 보답은 승진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이며, 친절에 대한 보답은 친절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베풂의 기쁨이다. 이런 기쁨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모든 존재의 핵심에 가까워질수록 노력과 이에 대한 보답이 같아지는 듯하다.

마크 네포의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중에서

#일의 괴로움

세상에 나보다 잘하는 개발자는 너무나 많습니다. 연차가 쌓여 갈수록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는데요. 일이 하기 싫다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할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진 나머지 괴로움이 커져서 하기 싫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결과에 연연하는 거죠.

이슬아와 장강명의 에세이에서 각각 비슷한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괴로움을 가졌다는 유명한 작가들을 보니 용기가 좀 나네요. 괴로움을 끌어안는 자세 정말 멋있습니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 중에서

소설 쓰는 일을 사랑하지만 즐겁고 재미있지는 않다. 예전에는 그런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치거나 애정이 식어서나 아니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내 글쓰기 실력보다 빠르게 커져서다. 내 필력은 더 나은 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을 때 아주 더디게 나아질 것이다. 나는 그 괴로움을 택하고 받아들인다.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 중에서

무려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이라는 고전이 있는데요. 제가 느끼기에 아래 구절은 '기꺼이 괴로움을 끌어안는다'는 의미에서 위의 두 소설가의 문장들과 일맥상통하네요.

손과 발이 그 나름의 일을 할 때, 고통이 따른다 해서 이상할 것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신의 일을 하는 한 고통이 따른다 해서 인간으로서의 본성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이 본성에 일치하는 것이라면 고통은 해악일 수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에서

#장인 정신

저는 <클린 코드>의 추천사의 아래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번역된 문장의 라임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요. 위에서 얘기한 '일의 괴로움'과 연결 짓자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괴로움조차 없이) 꾸준히 한다는 거니까요. 이런 게 바로 '장인 정신' 아닐까요?

품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위대한 방법론이 아니라 사심 없이 기울이는 무수한 관심에서 얻어진다.

로버트 C. 마틴의 <클린 코드> 추천 서문 중에서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는 번역가가 쓴, 자신의 일하는 습관에 대한 책입니다. 저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저는 이래요'하고 얘기를 합니다. 겸손한 분인지 아니면 자기 자랑을 멋쩍어하는 분인지 잘 모르겠는데 재미는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 책 곳곳에서 닮고 싶은 전문가의 자세를 발견했습니다.

그게 밤에 두 다리 뻗고 자는 비결입니다. 대충 이런 뜻이겠지 하고 어림짐작으로 번역하잖아요? 다른 일 하다가 갑자기 생각납니다. 가슴이 철렁해요.

김고명의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중에서

1850년대에 출간된 고전인 <월든>에서 찾은, 장인 정신과 소명 의식에 관한 구절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바로 윗 구절과 동일하게 잠 얘기가 나옵니다.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장인들은 일을 만족스럽게 해야 잠을 푹 자나 봅니다.

내게 망치를 주고 나로 하여금 벽의 세로 홈을 더듬어볼 수 있게 해 달라. 접합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못을 완전히 다 박고 그 끝을 성심껏 구부려 밤중에 혹시 잠을 깨더라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라. 그 일을 위해 시의 신을 불러도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그 일에, 오직 그런 일에 신은 당신을 도울 것이다. 당신이 주체가 되어 일을 해나가되, 박는 못 하나하나가 우주라는 기계의 구조를 단단하게 하는 대갈 못이 되도록 하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중에서

#자연스러움

적다면 적은 나이이지만 저에겐 인생 최대 나이인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자연스러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자연스러움은 나다운 것, 내가 원하는 것입니다.

김윤나의 <자연스러움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고, 개발자라는 직업은 나의 감각으로 선택한 나의 길이라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아무도 개발자 하라고 등 떠밀지 않았고, 심지어 사전 지식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용감하게 하겠다고 나선 거였거든요. 저의 다음 정류장이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선택한 지금 이 길에 대해서 확신이 있습니다.

낯설거나, 하지 않던 일, 용기 있는 도전은 삶의 생기를 만듭니다. 나를 불편함에 놓고 치열함의 끝까지 가보는 일은 숨겨진 퍼즐을 찾는 모험과 같습니다. 나는 땀, 눈물, 인내, 희생, 상처, 극복 같은 심리적 자원이 한 인간을 성숙 게 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다만 지금 당신이 이루기 위해 애쓰는 크고 작은 목표들이 당신으로부터 출발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뭘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원하는지 잘 모르는 혼돈의 과정을 거쳐 어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왠지 이게 나답고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는지, 남들이 뭐라 해도 ‘결국 저곳에 도착할 것 같다’는 나만의 감각을 가지고 사는지 묻고 싶습니다.

김윤나의 <자연스러움의 기술> 중에서

저는 빠르고 쉬운 해결책이 아니라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아서 적용할 때, 스스로 보기에도 '클린'한 코드를 작성했을 때 등등의 몇몇 상황에서 '제대로 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의 이 구절과 관련이 있어 보이네요. 이 책을 포함해서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관련된 책을 여럿 읽으면서, 일에 대해서도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굳이 노력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무리하게 자신을 크게 보이려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스스로를 값싸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한 인간으로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 바로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 일과 연관지어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구애받지 않고 나에게 일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여 내면에서 솟아나는 동기와 사명감이 이끄는 일과 마주하는 것이지요.

강상중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중에서


저의 직장 3년 차 사춘기는 책들에게 위안과 조언을 받으며, 이런 생각들과 함께 그럭저럭 싱겁게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작은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